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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쿠 궁터 산책

엔마 강∼사이쿠의 동쪽 끝단

엔마 강 사적의 동쪽 끝에는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엔마 강이라고 하는 시냇물이 있습니다. 거기는 사적의 동쪽 끝단뿐만 아니라 사이쿠의 계획적인 도시구획인 격자장 구획의 동쪽 끝단이었습니다.
 사이쿠 궁터는 대부분이 평탄한 대지 위에 있는데 대체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경사하고 있습니다. 도시가 만들어지면 빗물이나 배수 처리가 문제가 됩니다. 구획을 구분하는 도로의 측도랑에서 배수를 그 강으로 흘려보내고 그 문제를 해결하고 있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히라가나 ‘이로하 노래’먹서 토기 출토지

히라가나 ‘이로하 노래’ 묵서(墨書)토기 출토지
히라가나 ‘이로하 노래’ 묵서(墨書)토기
사이오가 살던 두 개 구획의 서쪽 구획에서는 11세기경의 물건을 중심으로 초벌구이의 접시 등에 먹으로 히라가나를 쓴 것이 대량으로 출토되고 있으므로 사이오에 종사한 궁녀가 공부나 붓글씨 연습 등에 사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한 히라가나를 쓴 토기 중에서도 2010년에 출토한 ‘이로하 노래’가 쓰인 먹서 토기는 귀중한 것입니다. 이로하 노래는 히라가나 전부 48문자를 이용해서 만들어져 11세기에 성립된 것으로 보이며 히라가나를 외우기 위한 노래이며 문자를 습득하기 위한 본보기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지름 약9cm의 작은 접시의 파편이며 내면에 ‘ぬるをわか(누루워와카)’, 외면에 ‘つねなら(츠네나라)’라는 노래의 일부가 쓰여 있습니다. 그 작은 접시는 헤이안쿄의 높은 문화가 곧바로 사이쿠에도 전해졌음을 보여주는 역사의 증거입니다.

사이오노모리

사이오(齋王) 노 모리 사이쿠 궁터의 중앙부 북쪽에 있는 ‘사이오노모리’라고 불리는 숲은 18세기의 그림에도 그려져 있으며 오랫동안 사이쿠의 중심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현재는 이세신궁이 관리하고 ‘사이오 궁터’의 석비가 있습니다.
 그런데 발굴조사를 거듭한 결과 사이오노모리는 헤이안 시대의 격자장 구획의 북서의 코너 부분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거기가 사이쿠에 있어서 의미가 있는 장소라는 기억이 전해진 것으로 생각됩니다.
‘사이오노모리’에서 쭉 뻗어 남쪽으로 가는 길은 격자장 구획의 남북도로를 답습하고 있습니다.

사이오 미타치의 비석

사이오 미타치의 비석 이쓰키노미야 역사체험관의 동쪽 맞은편에 ‘사이쿠 미타치의 비석’이라고 새겨진 석비가 있습니다. 그것은 1903년에 당시의 사이쿠 마을의 촌장들 7명이 주도하여 사이쿠를 표창하고 재흥시키는 목적의 단체가 만들어진 것을 계기로 설치된 것입니다. 당시는 귀중한 건물을 의미하는 ‘미타치(御館)’라고 하는 지명때문에 그 부근이 사이쿠의 중심일지도 모른다고 보고 있었습니다. 현재는 발굴조사에 의해 헤이안 시대의 사이쿠료의 서무 기관의 일부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 석비는 지역의 사람들이 100년 이상 이전부터 사이쿠에 경의를 갖고 소중하게 지켜왔던 것을 가르쳐 줍니다.

고대 이세도(道)

고대 이세도(道) 8세기 사이쿠 유적터의 북서부에서 남동부로 가는 길은 수도와 이세신궁을 연결하는 간선도로였습니다. 그 길은 사이오(齋王)나 이세신궁에 파견된 천황의 사자들도 이용했습니다. 현재 그 길을 고다이이세미치(고대 이세도(道))라고 명명하고 공원의 서측에서 폭 약9미터의 도로가 실물 크기로 복원 되었습니다.
8세기 후반부터 사적의 동부에 격자상 구획이 계획적으로 정비된 후 구획 내에서는 구획도로를 대신 이용했습니다.
에도 시대(1604∼1867) 사적의 남측에 산구카이도(신사참배 가도)라고 불린 도로가 정비되어 이세신궁을 방문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용했습니다.

하라이가와(강)

하라이가와(강) 현재는 구시다가와(강) 지류의 작은 강이지만 원래는 구시다가와(강) 본류의 큰 강이었습니다. 사이오(齋王)는 수도에서 사이쿠로 향하는 도중 여러 번 몸을 깨끗이 합니다. 그 강은 사이오(齋王)가 사이쿠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몸을 깨끗이 하는 강이었습니다.
에도 시대(1604∼1867) 이세신궁에 참배하는 나그네들도 그 강을 건널때 몸을 깨끗이 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쓰카야마 고분군

쓰카야마 고분군 사적의 북서부에는 13개 고대의 고분이 남아있습니다. 발굴조사나 1948년경 촬영된 항공사진에 의해 원래는 42개의 고분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현재 남아있는 고분 중에는 1변 약20미터의 정방형의 고분이나 약19미터의 지름을 가진 원형의 고분도 있습니다. 3호 고분은 발굴조사에 의해 5세기 후반부터 6세기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 지역의 유력자의 무덤이라고 생각되는 고대 고분군은 사이쿠가 설치되기 이전의 역사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후루사토 지구

붉은색으로 채색된 큰 도바(土馬)
후루사토 지구(발굴 조사 풍경)
후루사토 지구는 사이쿠 유적터에서 처음으로 발굴조사가 행하여진 장소입니다. 이곳에서 고급 벼루나 붉은색으로 채색된 큰 토제의 말 상이 발견됨으로써 유적터의 중요성이 인식되어 사이쿠 유적터의 연구가 시작되었습니다. 거기에서 발견된 6세기부터 16세기까지의 각 시대의 유구는 사람들의 생활이 계속되어 온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 지역이 강 가까운 대지 위에 있고, 생활환경에 혜택을 받은 것에 의한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또 7세기부터 8세기까지 규칙적으로 배치된 건물유적터는 사이쿠와의 관계가 지적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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